이 책은 두 가지 저술 목적을 갖는다. 첫번째 목적은 ‘종말은 에덴/창조 회복이다’라는 명제를 성경 본문 주해를통해 확인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고찰 없이 현상적인 것이나 우리 머리 속의 상상을 통해 추론되는 종말에 대한 언사들은 성경을 왜곡하고 그 결과 교회를 파괴하며 성도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만다. 따라서 건강한 종말론은 성경 본문에 대한 성실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두번째 목적은 이런 종말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통해 삶의 현장과 목회의 현장이 에덴 회복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에덴 회복의 관점에서 보는 종말론은 단지 미래에 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화두가 아니며 성경 주제의 중심으로서 성도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본 서를 통해 성도들의 삶의 현장과목회자들의 목회 현장이 잘못된 종말론에서 보호받고 성령의 간섭으로 더 풍성한 현장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중요한 목적이다.
이 책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째로, 성경은 창세기 1-2장의 창조와 에덴에 근거하여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구성한다. 곧 창조와에덴은 종말적 회복과 완성의 기본적 틀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와 에덴을 종말론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것은 당연이다. 곧 종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창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 수적이다. 그러므로 본서에서 종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창세기 1-2장을 중심으로 창조와 에덴에 대한 철저한 연구에 촛점을 맞춘다.
둘째로, 창조와 에덴에 대한 연구가 종말에 대한 이해를 결정한다는 사실과 이사야 46장 10절 말씀처럼 “태초부터 종말을 알리셨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볼 때, 종말에 대한 주제는 창조 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락 이후에도 창조의 기본적 틀 속에서 구약 역사 전체에 걸쳐 꾸준히 계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하나님은 완전하시고신실하시기 때문에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좌절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타락 이후의 구속 역사에서도 타락 전에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창조 목적이 이루어지는 회복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속 역사는 창조 회복의 역사 곧 에덴 회복의 역사인 것이다. 이 과정은 에덴 회복의 과정으로서 종말적이고 그 결말은 에덴 회복의 성취와 완성으로서 종말이다. 이런 명제 하에 창세기 1-2장을 통해 정리된 창조와 에덴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구약의 구속 역사에서 회복되고 적용되고 재현되고 활용되는가를 살펴 본다.
셋째로, 에덴 회복의 주제를 담고 있는 사건과 인물 그리고 제도들이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루려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선별된본문과 주제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또한 구약에서 에덴 회복 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될 때 그 주제는 필연적으로 종말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장의 제목에 ‘종말’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종말론 전문가, 이필찬 박사의 대작인 요한계시록 주석 상하권과 함께 그의 필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편이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구약편 만으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종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알 수 있다. 기존의 종말에 대한 개념을 성경에 근거하여 에덴 회복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성경적 종말론의 참의미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는 종말을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예언에 대한 성취적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매일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에덴/창조 회복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종말의 개념은 진정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곧 미래에 일어날 희망 고문으로서 재림 사건에만 천착해 있는 한국 교회의 종말론을수정할 필요성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일상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창조 회복 사건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따라서 이필찬 박사의 이 책은 허약한 종말론으로 회복의 일상을 잃어 버린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어떻게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준다. 더 나아가서 목회와 설교의 본질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목회자들에게 이 책은 참된 목회의 방향과 설교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추천의 글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요즘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일반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전문 성서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학계에선 성서를 서로 다른 이질적 본문들의 모음집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방식을 통시적 연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서학 연구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앞에 최종적 상태로 놓인 성서를 일관되게 이해하려는 연구방식입니다. 공시적 연구라 합니다. 성경을 통(桶)째로 들고 그 가운데를 관통(貫通)하는 물줄기를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문구들이 “성경은 여러 막으로 구성된 드라마다.” “성경은 장대한 이야기다.” “성경은 일관성 있는 메타 내러티브다.” “온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다.”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이뤄진 대서사다.”등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구속사적 읽기”(redemptive historical reading),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christocentric reading), “그리스도 완결적 읽기” (christotelic reading) 등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성경해석 원리들에 어깨를 견줄만한 참신한 성경해석 원리가 제안되었습니다. 이필찬 박사의 “종말론적 읽기”(eschatological reading)입니다. 책 제목이 책의 명제(命題)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에덴 회복 관점에서 읽는 종말론(구약편)”입니다. 제목이 명시하듯이 성경 내러티브의 시작이 질서와 아름다움의 에덴이고, 구약과 신약은 일그러지고 망가진 에덴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며, 신약의 끝에 가서 에덴의 회복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제대로 읽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시원(始原)에서부터 종말(終末)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상징인 “에덴”이 인간의 파국과 오염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 온전하게 회복되는 대서사의 전개 과정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약간 다른 문맥에서지만 윤동주 시인의 짧은 수필 ‘종시’(終始)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종점(終點)이 시점(始點)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멋진 표현입니다.
한편 사 46:10(“태초부터 종말을 알리셨다”)에서 창의적 영감을 얻는 이필찬 박사는 시원에서 종말을, 종말에서 시원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에덴의 시작을 다루는 창세기에서부터 그 최종적 완결 상태를 그리는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까지 가는 거대한 서사로 성경을 읽을 것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신앙적 함의를 내포합니다. 이유인즉, 한국 교계나 교회, 혹은 개인 신자들은 종말을 개인적 차원에서, 현상적인 사건 중심에서, 인간 중심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죽으면 천국 가는 문제, 시한부 종말론, 죽음 이후의 문제, 세계정세를 특정한 구약 성경 본문에 짜맞추기 등 늘 개인과 관련되는 저쪽 세상에 관심을 둡니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경륜, 회복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왜? 당장 자신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종말은 이미 구약 역사의 시원에 내포되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객관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시원 안에 씨앗으로내포된 종말은 하나님의 장대한 역사의 끝에 만개한 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필찬 박사는 구약에서 종말을 지나치게 미래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구약의 종말론 사상은 단순히 희망 고문처럼 막연히 미래에 일어날 어떤 것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현재 삶 속에서 에덴 회복의 진행 과정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아주 중요한 점을 환기(喚起)시킵니다. 즉 회복과 회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창세기의 에덴 수립 안에 내포되어있는 장차 풍성한 에덴 완성이 비록 인간의 죄와 그 오염으로 어느 정도 깨어지고 지체되었다 하더라도 에덴을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드라이브는 원래의 창조와 에덴으로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중세 청교도 문학의 금자탑인 존 버니언의 “실낙원”과 “복낙원”을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서 “복낙원”을 잃어버린 낙원(“실낙원”)을 되찾아 가는 “회귀”(回歸)로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복낙원은 잃어버린 낙원이 원래 가려고 했던 그 방향의 최종적 상태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저자 이필찬 박사가 힘들여 말하는 “에덴의 회복”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창조와 에덴은 종말론적 회복과 완성의 기본적 틀이다.… 종말은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에덴 회복의 과정이고 성취와 완성의 순간을 가리킨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혹시 신약학자 이필찬 박사가 쓴《구약 성서 신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맞습니다. 에덴 회복의 관점으로 본 구약 성서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구약 신학적으로 튼실하며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세밀한 구약 주석서를 읽는 느낌마저 듭니다. 본문 주석에 기반을 둔 구약 신학적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자는 창세기 1~3장 해석에 가장 큰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출발입니다. 창조/에덴/아담(1~3장)을 “에덴 회복의 표준”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에덴 회복의 표준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세우게 되면 이후에 나오는 구약 본문들에서 어떻게 에덴 회복 사상이 점진적으로 드러나게 되는지를 선명하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표준 본문 해석(창 1~3장)에 무려 180쪽이 되는 방대한 분량을 할애합니다. 치밀한언어학적, 구문론적, 고대 근동 배경적 주석 작업을 통해 신학적 결과물을 도출해냅니다. 한 단어도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모세오경 해석에 420쪽을 할애했으니 독자적 단권 모세오경 해설서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열두 편의 시편에서 에덴 회복 사상을 구현해내는 과정이나, 이사야서에서 종말과 에덴 회복 사상을 발굴하여 전개하는 방식이나, 에스겔서에서 성전 회복과 에덴 회복을 연계하여 논증해가는 방식 등은 주석가로서, 성서학자로서 이필찬 박사의 학문적 역량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종말의 개념이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에덴 회복의 과정이고 성취와 완성의 순간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에덴 회복 관점에서, 즉 종말론적 지향점을 갖고 구약의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를 알려주는 자동항법 교본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탁월한 안내서요 신뢰할만한 교본입니다. 저자 이필찬 박사의 완숙한 학문적 성취이기도 합니다. 곧이어 나올 신약편도 큰기대가 됩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종말론 전문가, 이필찬 박사의 대작인 요한계시록 주석 상하권과 함께 그의 필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편이 나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구약편 만으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종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알 수 있다. 기존의 종말에 대한 개념을 성경에 근거하여 에덴 회복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성경적 종말론의 참의미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는 종말을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예언에 대한 성취적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매일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에덴/창조 회복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종말의 개념은 진정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곧 미래에 일어날 희망 고문으로서 재림 사건에만 천착해 있는 한국 교회의 종말론을수정할 필요성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일상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창조 회복 사건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따라서 이필찬 박사의 이 책은 허약한 종말론으로 회복의 일상을 잃어 버린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어떻게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준다. 더 나아가서 목회와 설교의 본질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목회자들에게 이 책은 참된 목회의 방향과 설교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추천의 글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요즘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일반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전문 성서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학계에선 성서를 서로 다른 이질적 본문들의 모음집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방식을 통시적 연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서학 연구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앞에 최종적 상태로 놓인 성서를 일관되게 이해하려는 연구방식입니다. 공시적 연구라 합니다. 성경을 통(桶)째로 들고 그 가운데를 관통(貫通)하는 물줄기를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문구들이 “성경은 여러 막으로 구성된 드라마다.” “성경은 장대한 이야기다.” “성경은 일관성 있는 메타 내러티브다.” “온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다.”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이뤄진 대서사다.”등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구속사적 읽기”(redemptive historical reading),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christocentric reading), “그리스도 완결적 읽기” (christotelic reading) 등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성경해석 원리들에 어깨를 견줄만한 참신한 성경해석 원리가 제안되었습니다. 이필찬 박사의 “종말론적 읽기”(eschatological reading)입니다. 책 제목이 책의 명제(命題)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에덴 회복 관점에서 읽는 종말론(구약편)”입니다. 제목이 명시하듯이 성경 내러티브의 시작이 질서와 아름다움의 에덴이고, 구약과 신약은 일그러지고 망가진 에덴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며, 신약의 끝에 가서 에덴의 회복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제대로 읽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시원(始原)에서부터 종말(終末)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상징인 “에덴”이 인간의 파국과 오염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 온전하게 회복되는 대서사의 전개 과정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약간 다른 문맥에서지만 윤동주 시인의 짧은 수필 ‘종시’(終始)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종점(終點)이 시점(始點)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멋진 표현입니다.
한편 사 46:10(“태초부터 종말을 알리셨다”)에서 창의적 영감을 얻는 이필찬 박사는 시원에서 종말을, 종말에서 시원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에덴의 시작을 다루는 창세기에서부터 그 최종적 완결 상태를 그리는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까지 가는 거대한 서사로 성경을 읽을 것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신앙적 함의를 내포합니다. 이유인즉, 한국 교계나 교회, 혹은 개인 신자들은 종말을 개인적 차원에서, 현상적인 사건 중심에서, 인간 중심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죽으면 천국 가는 문제, 시한부 종말론, 죽음 이후의 문제, 세계정세를 특정한 구약 성경 본문에 짜맞추기 등 늘 개인과 관련되는 저쪽 세상에 관심을 둡니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장대한 구원경륜, 회복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왜? 당장 자신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종말은 이미 구약 역사의 시원에 내포되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객관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시원 안에 씨앗으로내포된 종말은 하나님의 장대한 역사의 끝에 만개한 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필찬 박사는 구약에서 종말을 지나치게 미래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구약의 종말론 사상은 단순히 희망 고문처럼 막연히 미래에 일어날 어떤 것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현재 삶 속에서 에덴 회복의 진행 과정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아주 중요한 점을 환기(喚起)시킵니다. 즉 회복과 회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창세기의 에덴 수립 안에 내포되어있는 장차 풍성한 에덴 완성이 비록 인간의 죄와 그 오염으로 어느 정도 깨어지고 지체되었다 하더라도 에덴을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드라이브는 원래의 창조와 에덴으로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중세 청교도 문학의 금자탑인 존 버니언의 “실낙원”과 “복낙원”을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서 “복낙원”을 잃어버린 낙원(“실낙원”)을 되찾아 가는 “회귀”(回歸)로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복낙원은 잃어버린 낙원이 원래 가려고 했던 그 방향의 최종적 상태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저자 이필찬 박사가 힘들여 말하는 “에덴의 회복”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창조와 에덴은 종말론적 회복과 완성의 기본적 틀이다.… 종말은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에덴 회복의 과정이고 성취와 완성의 순간을 가리킨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혹시 신약학자 이필찬 박사가 쓴《구약 성서 신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맞습니다. 에덴 회복의 관점으로 본 구약 성서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구약 신학적으로 튼실하며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세밀한 구약 주석서를 읽는 느낌마저 듭니다. 본문 주석에 기반을 둔 구약 신학적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자는 창세기 1~3장 해석에 가장 큰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출발입니다. 창조/에덴/아담(1~3장)을 “에덴 회복의 표준”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에덴 회복의 표준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세우게 되면 이후에 나오는 구약 본문들에서 어떻게 에덴 회복 사상이 점진적으로 드러나게 되는지를 선명하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표준 본문 해석(창 1~3장)에 무려 180쪽이 되는 방대한 분량을 할애합니다. 치밀한언어학적, 구문론적, 고대 근동 배경적 주석 작업을 통해 신학적 결과물을 도출해냅니다. 한 단어도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모세오경 해석에 420쪽을 할애했으니 독자적 단권 모세오경 해설서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열두 편의 시편에서 에덴 회복 사상을 구현해내는 과정이나, 이사야서에서 종말과 에덴 회복 사상을 발굴하여 전개하는 방식이나, 에스겔서에서 성전 회복과 에덴 회복을 연계하여 논증해가는 방식 등은 주석가로서, 성서학자로서 이필찬 박사의 학문적 역량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종말의 개념이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에덴 회복의 과정이고 성취와 완성의 순간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에덴 회복 관점에서, 즉 종말론적 지향점을 갖고 구약의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를 알려주는 자동항법 교본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탁월한 안내서요 신뢰할만한 교본입니다. 저자 이필찬 박사의 완숙한 학문적 성취이기도 합니다. 곧이어 나올 신약편도 큰기대가 됩니다.